2020. 12. 16.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986년 6월 의문사한 당시 서울대 1학년생 김성수의 유족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국가배상을 인정하였습니다.
김성수는 1986년 서울대 지리학과에 입학한 뒤 총연극회에서 활동하고 학내외 집회시위에 활발히 참여하던 학생이었습니다. 1학기 시험기간이던 6월 18일 영등포 자취방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 급히 집을 나선뒤 행방불명되었다가, 3일 뒤인 1986년 6월 21일 부산 송도앞 바닷속에서 잠수부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부산은 김성수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다, 김성수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매립지 공사현장 방파제 앞 바닷속이었고, 시신의 허리띠에 무거운 돌덩이가 여러 개 매달려있었으며 안경과 구두까지 그대로 신고 있었기에 김성수의 죽음에는 타살로 의심되는 많은 정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김성수의 신원이 밝혀지기도 전에 서둘러 부검을 실시하고 부검결과 두피하출혈과 경뇌막하 혈종이 발견되었음에도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1학년 1학기 성적조차 나오지 않은 시기에 김성수가 성적비관에 의해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리며 사건을 축소, 은폐하였습니다.
김성수의 유가족과 지인들은 오랜기간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고 2006년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당시 공안기관이 수배학생을 검거하기 위해 저학번 학생을 붙잡아 회유하거나 협박, 고문하던 사례가 빈번했던 것처럼 김성수도 그과 같은 과정에서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해 사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며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하였습니다.
민주화보상위원회는 2006년 위 인정결정에 따라 민주화보상법상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하였지만 김성수 본인과 유가족이 겪어야 했던 큰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민주화보상법상 보상을 받은 경우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도록 한 민주화보상법 제18조에 대해 위헌결정을 함에 따라 김성수의 유가족은 2019년 정신적 고통에 대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습니다.
소송과정에서 국가는 김성수의 죽음이 국가의 위법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부인하였고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주장도 하였으나, 재판부는 의문사위원회의 진상규명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와 진술 등을 종합해 '위법한 공권력의 개입, 행사로 김성수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사인에 대한 수사를 은폐, 왜곡함으로써 김성수의 생명권과 유족들의 행복추구권 , 알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였다'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또 재판부는 위법한 공권력의 개입으로 김성수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증거가 많은 점, 의문사위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기 전까지 20년의 오랜기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들의 노력이 번번이 좌절되어 왔던 점 등에 비추어 이들이 그동안 막대한 정신적 고통을 받아왔음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금전적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진실의 은폐와 증거의 부족은 국가폭력의 전형적인 모습임에도 증거의 부족으로 묻히고 규명되지 못한 수많은 의문사 사건의 피해자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하며 충분히 구제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성수의 죽음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인정을 계기로 이러한 의문의 죽음들이 조금이라도 재평가되고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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